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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

고대 요르단, 페트라 이전의 바위 분지 공동체 구조

by 정직한날 2026. 1. 15.

페트라 유적으로 잘 알려진 요르단 지역은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이미 사람들이 정착해 살아가던 공간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역의 초기 정착민들이 평지나 독립된 건축물을 선택하지 않고 굳이 바위와 협곡, 분지 안으로 들어가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페트라 이전, 이른바 선(先)페트라 시대에 형성된 바위 분지 공동체가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을 결정한 공간 선택이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고대 요르단 지역에서 페트라 이전에 형성된 바위 분지형 주거 공동체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바위와 협곡이 만든 삶터: 요르단의 자연 지형 활용

요르단 남부는 석회암과 사암이 풍부한 산악 및 협곡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와디 룸(Wadi Rum)이나 시크 협곡(Siq)처럼 깊게 파인 바위 지형이 곳곳에 분포해 있습니다. 이 지형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선사 시대부터 인간의 선택을 강하게 제한하고 동시에 보호해 주는 조건이었습니다. 선페트라 시대 사람들은 돌을 옮겨 구조물을 세우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암반과 분지, 동굴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해 주거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재료의 효율성 때문만이 아니라, 혹서와 한랭을 동시에 피할 수 있는 기후 대응, 외부 시선과 침입을 차단하는 방어성, 그리고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실질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공동체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바위 공간들은 통로와 계단으로 연결된 복합 주거지로 발전했고, 이러한 공간 구성 방식은 훗날 페트라 암석 도시의 기본 설계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즉, 페트라는 갑자기 등장한 도시가 아니라, 이미 수세기 동안 축적된 바위 주거 경험 위에서 완성된 결과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바위 주거 방식이 환경에 대한 소극적 적응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생활을 조직하기 위한 적극적인 공간 선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체 구조와 분지 활용: 분산과 연결의 미학

선페트라 시대의 바위 공동체는 중앙 광장이나 권력 중심 건축물이 뚜렷한 마을 구조를 갖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의 거대한 분지 안에 소규모 주거 공간과 작업장, 저장고, 의례 공간이 분산되어 배치되고, 이들을 자연 지형을 따라 형성된 통로가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외부 침입에 유리한 방어 구조이면서도, 내부 구성원 간의 지나친 밀집을 피하고 각 가구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바위 절벽에 조각된 선반, 벽면 홈, 계단 흔적 등은 단순한 생활 흔적이 아니라 공간을 기능별로 구분하려는 의도가 담긴 결과로 해석됩니다. 만약 이 구조를 단순한 주거 집합으로 본다면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공용 공간의 비중과 의례 흔적의 존재는 이 공동체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역할과 질서를 공유하는 사회 단위였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선페트라의 바위 공동체는 위계 중심 사회라기보다, 기능과 참여를 중심으로 조직된 공동체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페트라 이전의 기억: 건축이 남긴 문화적 정체성

오늘날 페트라는 바위를 조각해 만든 장대한 신전과 무덤으로 유명하지만, 그 기반에는 이미 선페트라 시대에 축적된 바위 공동체의 경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암반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는 기술, 협곡과 분지를 따라 공간을 배열하는 방식,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흐리는 건축 인식은 이미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일부 선페트라 유적에서 발견되는 분지형 제단과 천문 관측 흔적은, 바위 공간이 단순한 생활 영역을 넘어 신성한 질서의 일부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주거와 의례, 생산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은 공간 구성은 공동체 정체성의 핵심 요소였고, 이는 이후 페트라 문화 전반에 깊게 반영됩니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선페트라의 바위 공동체는 단순한 건축 양식이 아니라 자연을 어떻게 삶의 질서로 끌어들이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론: 선페트라 바위 공동체가 남긴 유산

고대 요르단, 페트라 이전의 바위 분지 공동체는 환경에 대한 적응을 넘어, 사회 구조와 공동체 질서를 공간으로 구현한 사례였습니다. 이 분지형 주거지는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삶과 의례, 생산과 신앙이 하나로 엮인 사회적 장치였습니다. 페트라의 찬란함 이전에 존재했던 이 조용한 공동체는 오늘날에도 시사점을 남깁니다. 자연과 대립하지 않고, 최소한의 개입으로 질서를 만들어낸 이들의 선택은 현대 건축과 도시 설계가 다시 고민해야 할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 중심성의 문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선페트라 시대의 바위 공동체는 이미 사라진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살아 있는 문화적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