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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

들판 위의 황금, 기마 유목민의 금속 공예와 무덤 문화

by 정직한날 2025. 12. 13.

초원 위에서 생활하는 유목민

스키타이(Scythians)는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 사이, 유라시아 대초원을 장악했던 유목 민족이었습니다. 흑해 북부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활동 영역은 광대했고,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한 그들은 단순한 전사 집단이 아니라 예술과 장례 문화를 고도로 발전시킨 문화 집단이었습니다. 특히 정교하게 가공된 금속 공예품과 거대한 무덤 유적들은 스키타이 문명의 예술성, 세계관, 사회 구조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말 위에서 살아가며 금속으로 상징을 남기고, 죽음 이후를 위해 삶을 조율했던 그들의 문명은 오늘날까지도 유라시아 고대 문화의 퍼즐을 푸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유목과 기마의 삶, 초원이 만든 문명

스키타이인은 대초원의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계절을 따라 이동하며 가축을 방목하는 유목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말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생존과 전쟁,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곧 말을 타기 시작했고, 전사는 평생을 말 위에서 보냈으며, 죽어서도 말과 함께 묻혔습니다. 기마 문화는 단순한 군사 전략이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이자 공동체의 질서였습니다.

말을 중심으로 한 유목 생활은 이동성이 뛰어난 군사력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스키타이의 영토 확장과 지속적인 영향력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고정된 도시나 성채를 짓지 않았지만, 놀라운 속도로 이동하며 외부 위협에 대응했고, 주변 농경 국가들과도 교류하거나 충돌했습니다. 기마 전사들은 활을 주무기로 삼았고, 복합궁이라 불리는 강력한 곡궁을 말 위에서 정확히 사용함으로써 전장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투박해 보이는 유목민의 삶 속에서도 정교한 사회 질서와 문화적 규범이 존재했습니다. 부족 연맹 단위의 사회 구조 속에서 귀족 계층과 평민 계층이 구분되었고, 각 부족은 유목 범위와 방목지를 둘러싸고 상호 협약을 맺거나 분쟁을 벌였습니다. 이 속에서 스키타이인은 자발적인 예술과 장례의식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시각화했고, 그것이 금속 공예와 무덤 구조에 응축되어 나타났습니다.

황금으로 그린 세계, 금속 예술의 정점

스키타이 유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그들의 금속 공예품입니다. 특히 금으로 제작된 동물상, 장신구, 무기 장식 등은 그 수준이 실로 경이롭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스키타이인의 신화와 종교, 사회적 위계, 자연에 대한 이해가 예술로 형상화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사슴, 표범, 독수리, 그리핀과 같은 동물들이 동적인 포즈로 표현된 ‘동물 양식(Animal Style)’은 스키타이 미술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금속 예술은 왕족과 귀족 계층이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금으로 제작된 칼집, 말 안장, 옷 장식은 그 자체로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전쟁과 제례, 외교의 현장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금속 예술은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것뿐 아니라, 세밀한 조각 기법과 상징성에서도 독창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의 투쟁, 균형, 상승적 구도는 스키타이인의 자연 철학과 윤리관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예술품의 제작은 이들 유목민이 단순한 철기 이용자에 그치지 않고, 정교한 금속 가공 기술을 보유한 장인 계층을 거느리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유럽, 중앙아시아, 페르시아와의 교역을 통해 다양한 금속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기술이 지역을 초월해 전파되기도 했습니다. 스키타이의 금속 예술은 단순한 미적 성과를 넘어, 교류와 흡수, 응용을 통해 성장한 복합문화의 산물이었습니다.

무덤, 삶을 묻고 세계를 새겼다

스키타이 문화의 또 다른 핵심은 그들이 남긴 거대한 무덤, 즉 ‘쿠르간(Kurgan)’입니다. 쿠르간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흙무덤으로, 중심에는 나무로 만든 관과 함께 다양한 부장품이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이 무덤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사후 세계에 대한 신념, 신분 질서, 정치 구조가 응축된 복합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쿠르간은 높이가 수 미터에 이르며, 내부에는 말 수십 마리, 금은 보화, 전리품, 심지어 시종들까지 함께 매장되기도 했습니다.

쿠르간은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의 장소이자, 죽은 자와의 영속적 연결을 상징했습니다. 중요한 전사나 부족 지도자가 사망하면, 온 부족이 그 무덤을 위해 함께 동원되었고, 부장품의 풍부함은 그 인물의 생전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금속 공예품은 죽은 자가 저세상에서도 자신의 위신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쿠르간을 통해 당시 스키타이 사회의 계층 구조, 무기 기술, 여성의 지위, 문화 교류의 흔적 등을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무덤에서는 무기를 소지한 여성 전사도 함께 매장되어 있었으며, 이는 ‘스키타이의 아마존’ 전설과 연결되며, 이 문명이 성 역할과 권위에 있어 예상보다 훨씬 복합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스키타이의 무덤 문화는 단순한 매장 의례가 아니라, 문명의 정체성과 철학이 반영된 예술적 공간이었습니다. 이들은 땅 위에서 이동하며 살았지만, 죽어서도 땅 아래에서 위엄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금속으로 만든 아름다움은 삶의 권위를 드러내고, 무덤은 그 권위를 영원히 보존하려는 구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