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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

우가리트 문자의 탄생과 고대 기록문화의 원형

by 정직한날 2025. 12. 28.

고대 시리아 북부 해안에 위치한 우가리트(Ugarit)는 기원전 14세기경 번성했던 도시 국가로,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이집트 문명 사이에서 활발한 교역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는 고대 세계 최초의 음소 문자 중 하나인 ‘우가리트 문자’를 탄생시킨 문명으로, 문자와 기록 문화의 혁신적인 진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입니다. 본 글에서는 우가리트 문자의 특징과 쐐기문자 전통의 영향, 그리고 이를 통해 남겨진 서사시와 기록 문화의 가치를 살펴봅니다.

점토판에 우가리트 문자를 새기며 기록을 남기는 장면

우가리트 문자의 탄생과 음소 체계의 혁신

우가리트 문자는 약 30개의 문자를 사용해 소리를 나타내는 자음 음소 문자(consonantal alphabet)로, 오늘날의 알파벳의 시초로 평가됩니다. 이는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수메르의 쐐기문자처럼 단어 또는 음절 단위로 표기하던 기존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특히 이 문자는 점토판 위에 쐐기 형태로 새겨졌지만, 음소 단위로 글자를 조합했다는 점에서 고대 근동 문자 역사에서 혁명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우가리트 문자는 수메르어나 아카드어가 아닌 고유한 셈어파 언어인 우가리트어로 기록되었으며, 교육을 받은 서기관들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그 문자 구조는 매우 체계적이며, 학습과 사용이 이전 문자보다 상대적으로 간편했습니다. 이는 문자 보급과 기록 확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더 넓은 계층이 문서화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처럼 우가리트 문자는 형태는 쐐기문자를 차용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문자 체계를 창조한 예로 평가받으며, 후대의 페니키아 문자, 그리고 그 이후의 그리스와 라틴 문자로 이어지는 문자 계열의 원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쐐기문자 전통과의 융합과 계승

우가리트 문자는 그 형태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쐐기문자 시스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점토판에 새기는 방식, 서기관 교육 체계, 공식 문서 작성의 틀 등은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문화에서 계승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우가리트 문자가 음소 기반의 표기법을 채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록 속도가 빨라지고, 더 복잡한 내용도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는 장점을 낳았습니다.

실제로 우가리트 유적에서 출토된 수백 점의 점토판은 행정 문서, 무역 기록, 외교 서신은 물론, 교육용 문서와 신화적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가리트가 문자 사용을 단지 통치나 행정 목적에 한정하지 않고, **문화적, 교육적, 종교적 영역까지 확장**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가리트는 여러 언어와 문자의 문화가 공존한 다언어 도시였습니다. 일부 문서에서는 수메르어나 아카드어 문장도 병기되어 있어, 당대 국제 언어와의 혼용, 교역 도시로서의 개방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쐐기문자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킨 우가리트의 문화적 유연성과 창의성을 잘 보여줍니다.

우가리트 서사시와 고대 중동의 정신세계

우가리트 문자가 가장 빛을 발하는 분야는 바로 문학과 신화입니다. 특히 ‘바알 서사시(Baal Cycle)’는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풍요의 신 바알과 죽음의 신 모트(Mot) 사이의 갈등과 부활을 그린 신화입니다. 이 서사시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고대 중동 사회에서 자연 주기, 농경 생활, 생사관을 상징적으로 담은 정신문화의 총체였습니다.

이 외에도 ‘아낫 여신의 전쟁 서사시’, ‘다니엘과 아크하트 이야기’ 같은 작품들은 영웅주의, 정의, 신의 권능, 가족과 왕권의 문제 등을 다루며 당시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과 정치적 질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교육과 전통의 계승, 종교 의례에서의 활용, 공동체 내 윤리 기준의 확립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우가리트 문학은 히브리 성서, 후대 그리스 신화 등에도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될 만큼, 중동 지역의 사유 구조와 종교관, 우주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문자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곧 기록문화가 인류 문명의 가장 강력한 기반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우가리트 문자는 문자 혁신의 결정판이며, 기록을 통한 문화 보존과 사상 전승의 상징이었습니다. 쐐기문자의 전통을 발전시키면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한 우가리트는 고대 중동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인류 문자의 역사에서 오늘날까지도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가리트를 통해 우리는 문자의 탄생과 기록문화가 얼마나 깊은 문명적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