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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말은 산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by 정직한날 2025. 12. 20.

바스크 지역에서 할아버지가 공동체 사람들에게 구전 설화를 전하는 장면

유럽 남서부, 피레네 산맥 서쪽 기슭에 놓인 바스크 지역은 언뜻 보기엔 유럽 대륙의 다른 산악 지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수천 년 전부터 인도유럽 언어계통 밖에 존재해 온 유일한 문화 언어권으로, 수많은 정복과 지배 속에서도 독립적인 말과 전통을 유지해온 고유한 공동체입니다. 바스크어(euskara)는 계통상으로도 고립된 언어로, 주변 어느 언어와도 친연관계가 없습니다. 바스크 사람들은 글보다 입, 기록보다 기억에 의지해 자신들의 세계를 지켜왔고, 오늘날까지도 이 언어는 살아 있습니다. 이 글은 문명과 문자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비켜나 있는 바스크 지역의 언어와 구술 전통을 통해, 잊혀지지 않은 말의 힘과 지속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언어가 살아남은 고립된 땅

바스크어는 오늘날 학계에서 ‘언어적 고립체(isolate language)’로 분류됩니다.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 않고,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고대 언어와도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 언어가 유럽 본토에서 고립된 채 수천 년을 버텨낸 사실은, 언어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문명의 대이동과 정복, 제국의 확장 속에서 수많은 언어들이 사라지고 혼합되었지만, 바스크어는 피레네 산맥이라는 천연의 요새 속에서 단절과 외부 자극을 피해 독자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스크어의 생존을 단지 지리적 고립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바스크인들은 외세의 통치를 수차례 경험했습니다. 로마제국의 군대가 이 지역에 진입했을 때도, 중세 프랑크 왕국의 세력이 피레네를 넘봤을 때도, 바스크 사람들은 언어를 지키기 위해 침묵 속의 저항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공문서가 아닌 일상 대화에서, 전승자가 아닌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말로 언어를 계승해 왔습니다. 이처럼 언어를 공식 기관이 아닌 생활의 중심에서 지켜내고자 했던 태도는, 단순한 방어를 넘어서 문화적 자기확신의 발현이었습니다.

바스크어는 단순히 말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체성이자 민족의 집합기억이며, 산과 구릉, 해안과 마을을 아우르는 공간의 언어입니다. 언어는 바스크인의 삶 그 자체로 체화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원동력입니다. 소멸 위기에서조차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 공동체는, 단지 유럽의 변방 민족이 아니라 언어 생존의 기적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종이에 쓰지 않아도 이야기는 남았다

문자가 지배하던 시대에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바스크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문자 기록보다 앞선, 혹은 문자 없이도 충분했던 삶의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말은 생활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전승과 축제, 윤리와 정체성을 전하는 매개였습니다. 대표적인 전통이 바로 ‘베르차(Bertsolaritza)’입니다. 이는 즉흥으로 시를 짓고 노래하며 사람들 앞에서 구술하는 문화로, 바스크 사회에서는 하나의 예술이자 역사였습니다.

베르차는 단순한 시 낭송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수행하는 사람은 단어 선택의 정확성과 운율 감각, 청중의 반응까지 고려해야 했으며,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짧은 순간에 완성해야 했습니다. 이 전통은 공동체의 문제를 풍자하거나 과거를 회고하고, 조상의 영광을 되새기며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축제에서, 장터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의례에서 베르차는 늘 중심에 있었고, 그 속에서 말은 기록되지 않아도 모두의 기억 속에 새겨졌습니다.

구전 전통은 신화 속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했습니다. 바스크 지역에는 ‘마리(Mari)’라는 여신 신화가 전해지며, 이는 바람과 산, 불의 기운과 연결되어 자연신앙과 결합되었습니다. 마리의 이야기는 글로 남지 않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외조모의 무릎에서 듣고 자랐습니다. 이야기는 돌에 새기지 않았지만, 아이의 기억에, 마을의 입에, 산의 메아리에 남았습니다. 이처럼 바스크 사회는 문자가 없는 시대에도 자신들만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고유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침묵 속에서 더 단단해진 말

20세기 중반, 스페인 내전 이후 바스크어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프랑코 정권은 바스크어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공공장소에서는 스페인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바스크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했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스스로 바스크어 교육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바스크어는 마치 죄인의 언어처럼 다뤄졌고, 공공 영역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금지되고 통제될수록 바스크어는 더 조용히, 더 깊이 숨쉬었습니다. 부엌에서, 잠자리 옆에서, 시장 골목과 교회 뒷마당에서 바스크어는 작게, 그러나 끊임없이 울려 퍼졌습니다. 언어는 물처럼, 억압된 구조 틈을 흘러 다니며 새로운 생존 경로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의 생존이 아니라, 문화적 기억이 저항의 형태로 재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정권의 억압이 끝난 이후 바스크 지역은 빠르게 언어 재건 운동에 나섰습니다. 자치권이 부여되면서 바스크어는 다시 교육과 행정에 도입되었고, 방송과 출판 시장에서도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화와 언어 혼용은 커다란 도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바스크어를 실생활 언어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단지 교육만이 아니라 문화를 통한 재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바스크어는 살아 있습니다. 그 말은 피레네의 바람에 섞여 있으며, 마을 어귀의 바위 틈에서, 노인의 입가에서, 아이의 손노래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은 그 말은, 바스크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게 해주는 방식이자, 기억의 형식입니다.